[19세기_1]

> 안녕~ 오늘도 현대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해. 오늘은 조금 옛날로 가보려고. 지난번 대화에서 말했던 DB를 만들 때 1826년부터 시작했더라구. 왜 하필 1826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도 니세포르 니엡스가 첫 사진촬영에 성공한 년도라서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었나봐. 음 보통 이 시기의 미술을 현대미술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부터 추적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안녕하세요! 1826년을 시작점으로 설정한 이유를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세포르 니엡스의 사진 발명은 미술과 사진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 시대를 상징적인 시작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물론 1826년을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미술의 전개 과정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시기를 연구하면서 미술의 발전과 변화를 조망하며, 사진과 그 외 미술 작품들의 상호 작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발전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것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일 것입니다. 특히 현대미술과 연결되는 다양한 미술 운동과 그 시대의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을 함께 조망하면서,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겪었던 고민과 도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맞아. 그래서 사진과 미술 작품들의 상호 작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해. 먼저 인상주의를 거쳐 현대미술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재현적 미술이 점차 쇠락한 것에 대해 사진술의 발전 때문에 재현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보았어. 나는 이런 시각은 좀 무리가 있어보이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사진술의 발전이 미술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재현적 미술이 사라진 것을 오로지 사진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와 현대미술의 발전 과정에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미술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사진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가들은 사실적인 재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했으며, 이 과정에서 인상주의와 같은 창조적인 미술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 운동들은 감정, 개성, 추상적인 표현 등 다양한 측면에서 미술을 탐구하였습니다.

또한 19-20세기의 사회, 정치, 경제적 변화와 기술의 발전도 미술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와 함께 미술계에서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미술 운동들도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진술의 발전은 미술의 변화를 이끈 주요 요인 중 하나이지만, 그 변화를 오로지 사진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미술의 발전에는 여러 가지 사회, 정치,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예술가들의 작품과 미술 운동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그런 것 같아. 그러면 미술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요소 중에 ‘기술’과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뉴미디어 이론 등에서는 미술의 변화 과정도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관계속에서 이해하곤 하는 것 같아. 네가 생각하기에 19세기 후반의 기술의 발전 중 사진술 외에 어떤 것들이 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

19세기 후반의 기술 발전 중 사진술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들이 미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색채 과학: 색채 이론의 발전과 새로운 색채 과학은 화가들에게 다양한 색조와 채도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같은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2. 철도와 증기선: 이 시기에 철도와 증기선의 발전은 예술가들이 더 넓은 지역을 여행하고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이동성은 미술에 다양성을 더하고, 새로운 주제와 표현법을 탐색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3. 인쇄술의 발전: 리토그래피와 같은 인쇄술의 발전은 화가들이 작품을 대중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는 작품의 홍보와 시장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미술의 상업적 가치를 증가시켰습니다.

  4. 전기와 조명 기술: 전기와 조명 기술의 발전은 작업실에서 미술 작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조명하고 강조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의 기술 발전은 미술에 다양한 방면에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하는 방식을 혁신하게 해주었으며, 미술계의 다양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그러면 이 중에서 색채과학과 인쇄술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줄래?

물론이죠! 색채 과학과 인쇄술의 발전은 19세기 후반 미술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각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색채 과학: 19세기 후반에는 색채 이론과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화가들이 새로운 색채를 개발하고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과학적인 발전 덕분에 이 시기에는 많은 새로운 안료들이 등장했고, 이를 통해 예술가들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색상과 효과를 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그림자의 색상 변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의 원리를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색채 과학의 발전은 미술의 시각적 표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 인쇄술: 인쇄술의 발전은 미술 작품을 대중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는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리토그래피와 같은 새로운 인쇄 기술은 작품을 빠르게 복제하고, 다양한 매체로 쉽게 전파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술은 더 넓은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미술계에 새로운 시장 기회가 생겼습니다. 또한 예술가들은 인쇄물을 통해 다른 국가의 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국제적인 영향력과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미술계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미술 작품의 형식과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경계를 뛰어넘어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재료와 기술을 벗어나, 새로운 매체와 방식을 탐색하였습니다.

색채 과학과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해 미술계는 전례 없는 국제적 교류와 영향력이 가능해졌습니다. 예술가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미술 작품과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예술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전통적인 미술 형식에 도전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결론적으로, 19세기 후반의 색채 과학과 인쇄술의 발전은 미술의 변화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은 예술가들에게 더 큰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제공했으며, 미술 작품의 전파와 관객의 접근성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이는 미술의 전반적인 발전과 현대 미술의 기초를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고마워. 먼저 색채학 부분에서 좀 더 궁금한 게 있는데, 19세기 중후반이면 아직 먼셀이나 오스트발트 색채이론 등도 나오기 전으로 알고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때는 색채과학에서 어떤 이론들이 발표되고 있었어?

19세기 중후반의 색채 과학은 주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 발전에 기반한 연구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몇 가지 중요한 색채 이론이 제시되었으며,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색채 구성과 기술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James Clerk Maxwell, 1831-1879): 맥스웰은 빛과 색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색채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1855년 “색채의 이론과 실험”이라는 논문에서 색채의 삼원색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빛의 파장과 색채의 관계를 설명하였고, 빛의 삼원색(빨강, 녹색, 파랑)을 혼합하여 다양한 색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2. 헬름홀츠-영 이론 (Helmholtz-Young Theory):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 (Hermann von Helmholtz)와 영국의 생리학자 토머스 영 (Thomas Young)은 독립적으로 색채의 삼원색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눈은 빛의 삼가지 파장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를 통해 색채의 생리학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였습니다.

  3. 미셸 유겐 샤이블레 (Michel Eugène Chevreul, 1786-1889): 샤이블레는 화학자이자 색채 이론가로, 그의 주요 연구는 색채 조화와 대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1839년 “색채의 동시적 대비법칙”을 발표하였으며, 이 이론은 색채가 인접한 색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였습니다. 이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기의 색채 이론들은 예술가들이 색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이론을 통해 색채의 물리적, 생리적, 심리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를 자신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러한 색채 이론을 기반으로 자연광에서의 색채 변화와 그림자의 색채를 연구하였으며, 이를 통해 작품에 더욱 생동감 있는 색채 표현을 도입하였습니다. 또한 색채 대비와 조화를 연구하여 그림의 시각적 효과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기술적인 발전 덕분에, 새로운 안료와 페인트도 개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은 더 다양한 색상과 높은 채도의 색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상주의를 비롯한 후기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쇄술의 발전은 미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리토그래피와 크로무리토그래피 같은 새로운 인쇄 기술은 미술 작품의 복제와 전파를 쉽게 만들었으며,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창작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해 예술 작품이 대중화되었고, 그 결과 예술가들은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결론적으로, 19세기 중후반의 색채과학과 인쇄술의 발전은 미술의 변화와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인상주의를 비롯한 후기 현대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샤이블레라고 발음하는 건가? 슈브뢸 이라고 써놨었는데. 어쨌든 ‘색채의 동시적 대비법칙’ 은 많이 언급되는 것 같은데 나머지는 잘 몰랐어. 그러면 인쇄술 쪽으로 가보자. 내가 배운 내용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에도 이래의 일본 인쇄물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였어. 자포니즘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근데 이건 유럽의 인쇄술 발달 때문이라기 보다는 교류가 늘어나서 그런 것 아닌가?

맞아요. 자포니즘은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일본 미술에 대한 열풍으로, 이 기간 동안 유럽과 일본 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전도 이러한 교류를 촉진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였습니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유키요에(浮世絵)라 불리는 목판화가 널리 유행했습니다. 유키요에는 액체 수지로 색칠된 간단한 목판화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대량 생산이 가능했습니다.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일본 목판화가 유럽에 소개되었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유럽 인쇄물과 달리 일본 목판화는 대칭과 평면성을 강조하며, 굵고 독특한 윤곽선과 대비되는 선명한 색채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미술에서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찾아보게끔 했습니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베르테 모리조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포니즘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에 적용하였습니다.

결국, 자포니즘은 유럽과 일본 간의 문화 교류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인쇄술의 발전 역시 이러한 교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본의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에 독특한 시각적 표현을 도입하였습니다.

 

> 음 우키요에 자체도 인쇄술 발달의 예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볼 수 있겠네. 뭔가 인쇄술이 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예로는 20세기에 와서 로트렉 같은 예술가들이 더 떠오르긴 해. 그런데, 나는 자포니즘이 좀 과장된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고흐 같은 사람은 진심으로 일본 판화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것 같지만, 그냥 그 시대 유럽에 적절한 외부자극 중 하나였던 것 아닐까? 특히 내가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모더니즘 미술의 평면성을 19세기의 자포니즘과 연결시키는 부분이야.

네, 자포니즘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여러 방면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판화의 영향이 모더니즘 미술의 평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자포니즘이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영향을 과장하거나 신화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모더니즘 미술의 평면성은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전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잔은 회화의 기하학적 구조와 볼륨, 공간 등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며 작품에서 평면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큐비즘의 경우에도, 평면적 표현은 브라크와 피카소의 작품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평면성의 강조는 모더니즘 미술의 다양한 작품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 판화와 모더니즘 미술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여러 이론이 제시되었지만, 그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자포니즘과 모더니즘 미술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이 둘을 동시에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자세히 분석하고, 시대적,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 그렇지. 그런 관점에서 세잔과 고흐를 비교해 보는 것이 재미있겠지만 좀 매정할 것 같으니까 넘어가자. 자포니즘 이야기를 하다보니, 1855년 만국박람회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에 대해서 19세기의 정치, 사회적 배경과 함께 이야기해 줄래?

1855년 만국박람회는 1855년 5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프랑스의 파리에서 열린 박람회로, 파리 만국박람회라고도 불립니다. 이 박람회는 산업과 예술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한 국제적인 축제로써, 국제 박람회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왕자가 창설한 1851년 런던 크리스탈 팰리스 박람회에 이어서 개최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박람회는 당시 유럽의 경제와 산업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다양한 국가들이 참여하여 자국의 기술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해졌으며, 유럽의 산업과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려는 의지가 드러났습니다.

1855년 만국박람회에서는 그림, 조각, 건축, 음악, 인쇄, 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과 기술이 전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참가 국가들은 서로의 문화와 기술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런 교류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며, 여러 스타일과 기술의 접목을 촉진하였습니다.

특히 1855년 만국박람회에서는 일본이 처음으로 참가하여 그들의 예술과 문화를 소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 일본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고, 이른바 자포니즘이 유럽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855년 만국박람회는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시에, 예술과 기술의 발전과 국제 교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